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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有本末......물건에는 뿌리와 끝이 있다

 

上卦......줄기

下卦......뿌리

 

복희팔괘(伏羲八卦)

 

점사(占辭)

괘사(卦辭)

효사(爻辭)

 

8  괘ㅡ사물 상징

64괘ㅡ사건 상징

 

單卦...3爻8卦

重卦...6爻64卦

 

事有終始......일에는 시

 

https://cafe.naver.com/bohd/81962?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mJvaGQiLCJhcnRpY2xlSWQiOjgxOTYyLCJpc3N1ZWRBdCI6MTc3ODM5NTg5NjY0MH0.AoQXwerWaQgqILFWuRUf_YwDfcntf66DFg8Mpy5e8Mc

 

자, 그리고 『대학(大學)』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 물건에는 뿌리와 끝이 있어요. 자, 보세요. 괘 아래에 있는 게 뿌리고 위쪽이 끝이죠. ‘나무목(木)’자에서 비교해 보세요. ‘나무목(木)’자에서 아래쪽에 표시하면 ‘뿌리본(本)’자죠. 위에 표시하면 ‘끝말(末)’자입니다. 본과 말을 알아야 하고요, 뿌리가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시작과 마침’ 하면 시간적인 우선순위고요, 뭐가 더 바탕이 되는지 구조적인 우선순위가 있어요. 그래서 “물유본말(物有本末)” 사물에는 구조적인 우선순위가 있고, 일에는 시간적인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물건과 사건이 달라요. 사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펼쳐지니까 사건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이걸 종합해서 보세요.

여기가 본(本)이고 여기가 말(末)이고. ‘나무목(木)’자 위에 표시한 게 말(末)이고 ‘나무목(木)’ 밑에 뿌리가 본(本)이죠. 구조적인 우선순위(本末)나 시간적인 우선순위(終始)를 잘 알아서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걸 정확히 아는 게 도(道)라는 겁니다.

이걸 알면 사실 우주의 로고스를 안 거예요. 우주가 뭘 먼저 하라고 하는지 뭐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상(象)을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명확하게, 자명하게 알면 그게 상(象)이에요. 자, 보세요. 자명하게 안다고 할 때 여러분은 그걸 생각으로 표현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뭘 알고 계신 거죠? 그 정보, 어떤 정보를 알고 계세요.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말로 표현해 보는 겁니다. 표현이 좀 안 맞으면 “하, 이게 아닌데.” 하면서 말을 자꾸 바꿔 봐요. 그 내면의 느낌을 다 표현할 때까지 말을 바꿔 봐요. “이 말이야.” 딱 해요. 뭘 알고 계신 겁니까? 그게 상(象)이에요.

로고스를 아는 비법, 이데아를 아는 비법은 이렇습니다. 명상 중에 정신을 깨어서, 신(神)과 하나가 된 뒤에 자꾸 생각을 해 보면서 물어보세요. 신과 하나가 안 되어도 돼요. 자명한 느낌만 들면 되는데, 자명한 느낌을 더 키우기 위해 욕심을 누르고 양심과 신성을 극대화한 다음에 “이 생각은 자명하냐?” “이것은 타당하냐?”라고 물어보시면요, 자명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탁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안다.” “맞다.” 먼저 그래요. 무슨 생각 나실 때 보세요. 통으로 느껴져요. “맞다.” 뭔가를 알고 계세요. “뭘 알아?” “뭐가 맞는다는 거야?” 그때사 말로 표현하는 거예요. “이러 이러 이런 (것이다).” 그런데 말이 조금 안 (정확한 것 같아요). 이게 찜찜해요. 다 표현이 안 되면 찜찜해요. 이렇게 해 보고 이렇게 해 보고 (찾아 가요). 그림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그려 보고, 찜찜해요. 내 마음에 뭔가가 있어요. 그걸 정확하게 표현하기 전까지는 찜찜해요.

내 안에 ‘미(美)’도 있고 ‘진(眞)’도 있고 ‘선(善)’도 있어요. 뭐가 진리인지 뭐가 옳은지 뭐가 아름다운지 기준이 다 있어요. 그게 상(象) 안에 다 있어요. 이게 그대로 구현될 때만 아름답고 맞고 옳고 그래요. 서양의 예술철학은 이데아에서 시작해요. 플라톤이 무슨 얘기를 했냐면 “인간 안에는 이 이데아가 있고, 인간은 이 이데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걸 ‘에로스’라고 그래요. “이데아에 대한 사랑이 예술의 근원이다.” 완전에 대한 사랑, 뭔가 더 하면 더 자명한 게 나올 것 같은 그 힘, 그 힘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고, 진리를 추구하게 하고, 미술을 추구하게 하고 예술을 추구하게 하는 겁니다. 이해되세요?

지금 여러분도 뭔가 갈망을 갖고 계신 것은 이데아에 대한 사랑, 에로스 때문이에요. 에로스 때문에 움직이는 거예요. 더 완전해지고 싶어서. 신성에 대한 갈망입니다. 그런데 그 신성이 자꾸 여러분 안에서 뭔가 정보를 주고 있어요. 그걸 잘 받아먹으면서 따라가면 점점 더 완전한 존재가 되어 갈 수 있습니다. 서양 철학과 『주역』을 같이 꿰어서 이해하세요.

(중략)

“아! 또한 ‘존재함·망함’ ‘길함·흉함’을 구한다면” 점을 쳐서 내가 보존될까 망할까 길할까 흉할까를 알고 싶다면 “거처함에 알 수 있으니” 거처한다는 것은 조용히 어디 가서 자리 잡고 앉아서 『주역』부터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거처함에 알 수 있으니, 지혜로운 자는 그 단사(彖辭)를 관찰한다면 생각이 반을 넘을 것이다.” 괘에 붙은 설명들 있죠? 괘랑 효에 붙은 설명들을 잘 이해한다면 “생각이 반은 넘을 것이다.” 꽤 알아낼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도 우주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 그런데 제가 이걸 자꾸 얘기하고 싶어서요. 여러분 안에는 영(靈)이 있고, 에고인 혼(魂)이 있죠. 영 안에 있는 정보가 원상(原象)이거든요. 이데아예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만나는 사물은 뭡니까? 지금 보는 나무는 형(形)이거든요. 그 형(形)에 담겨 있는 상(象)을 읽어 내야 해요. 그러면 그 상(象)은 내 안에도 있겠죠. 나무라는 형체 내면에 있는 상을 읽어 내야 해요. 나무라는 형체랑 내 혼, 내 육신, 나라는 형체, 이렇게 두 형체끼리 만나면 고급 정보가 교환되지 않죠. 그러면 나는 마음을 써서 이 형체를 읽어 내요. 그러면 형체밖에 안 보여요. 또 형체에 적용되고 있는 법칙을 읽어 내요. 자, 혼은 여기까진 해요. 법칙까진 읽어 내요. 이게 과학자들이 하는 영역이에요. 법칙까지는 과학자가 알아냅니다. 실험해 보면 알거든요. 떨어뜨려 보고 불로 태워 보고 물에 넣어 보고 얼려 보고 녹여 보고 하다 보면 법칙이 보여요.

법칙까지는 혼(魂)이 알아내는데, 상(象)을 알아내는 것은 영(靈)만이 할 수 있어요. 영이 탁 자명하다고 알아요. 사실은 여러분 영에 원래 알고 있던 게 여러분의 혼에 드러나는 거죠. 자, 형체와 법칙 등 외부 정보를 여러분 혼(魂)에 넣고 사고를 했더니 영이 이 상을 바로 꿰뚫어 보고 여러분 혼에 가르쳐줘요. “이거야.” 하고. 원래 하나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물건을 보고 법칙을 알아내는 건 과학까지 알아내는 거고요, 철학자는 하나 더 있어서 영감으로 알아내요.

그런데 그 영감이 막연히 있다가 알아내는 게 아니고, 그런 일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을 잘 가다듬고 혼(魂)을 잘 교통 정리하는 중에, 영(靈)이 “자명해.”라고 말만 해 주면 상(象)은 드러나게 되어 있거든요. 영이 자명하다는 말을 하게 자꾸 만들어 내면 돼요. 그러면 툭 툭 알아져요. 생각 이전에 내면에서 탁 “맞다.” 하는 게 나와요. 연구하시다 보면 “아!” 해요. “아!” 할 때는 지금 뭔가 알긴 알았는데, 뭘 알았는지는 말로 해 봐야 해요. “아! 사람은 거짓말하면 안 돼.” 그러면 그게 통으로 알아져요. “아!” 할 때 와요. 영이 혼한테 바로 정보를 줬기 때문에 혼은 이때 압축파일로 받아요.

그래서 그다음에 이걸 풀어 봐요. 그러면 여기서 많은 파일들이 나와요. “거짓말하면 안 되고, 그러면 이럴 때는? 이럴 때는?” 이렇게 이제 혼이 하나하나 풀어서 정리를 해요. 이렇게 소화해 낸 능력이 여러분의 영성이에요. 이걸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해 볼 수 있는지, 이게 영성지능이에요. 알아내기만 하면 안 돼요. 알아낸 걸 해 보는 데까지 가서, 그럴 때 여러분 영성이 ‘높다’ ‘낮다’가 나와요. 아이들 영성지능을 기르는 것도 이 원리를 알아야만 길러 줄 수가 있습니다. 아시겠죠? 아무래도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플라톤은 영이 이렇게 바로 알아내는 이 힘을 누스(nous)라고 했고요, 혼이 법칙들을 읽어 내는 능력을 로고스(logos)라고 해서 로고스를 나눠요. 영이 상(象)을 바로 알아내는 그 지적 능력을 누스라고 따로 부르고요. 사실은 누스도 로고스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더 고상한 용어를 하나 만들어 준 거죠. 로고스는 일반적인 생각에도 쓰잖아요. 논리라는 뜻으로 쓰거든요. 그러니까 로고스를 좀 더 아래로 두고 누스라는 영감을 따로 설정해요. 상(象)을 읽어 내는 능력입니다. 누스로 상(象)을 읽어 내고 로고스로 법칙(法)을 읽어 냅니다. 과학자들도 법칙은 써요. 여러분도 이성을 써서 법칙을 읽어 내지만, 그 이데아를 바로 읽어 내는 게 이성 중에 최상의 이성이죠. 원래 하나였기 때문에 그냥 알아 버리는 그 능력이 있어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하시면 되겠어요? 생각을 자명하게만 하면 로고스를 아실 수 있다는 거 아시겠어요? 명상하시면서 생각을 자명하게 하다 보면 자명한 것들이 툭 툭 떨어져요. “아!” 하는 게 있습니다. 그런 것은 바로 지금 여러분 내면 중에 가장 신성의 영역에서 정보가 교환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혼이 그걸 읽어 내요. 그 로고스에 있는 정보들을 영이 읽어 내지만, 결국 혼이 번역해야 하니까 혼의 입을 통해서 뭐라고 뭐라고 말이 나와요. 그 말을 쭉 써 놓으면 경전이 돼요. 로고스가 말하고 혼이 적어서 내놓은 게 경전들이에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로고스가 말하고 예수님의 혼이 쭉 말로 해 놓은 걸 『성경』이라고 하고 불경이라고 하고, 지금 『주역』도 그런 겁니다. 『주역』을 쓰신 분 안에서 성령이 얘기하는 걸 받아 적어 놓은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죠. 이해되시죠? 별 소리 다 합니다마는, 다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제가 흐뭇해요. 여러분들도 지금 꽤 낚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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