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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anja-edu.com/0206_month/02.htm

 

조선 중기 유학자 栗谷 李珥(1536∼1584)는 氣發理乘一途說(기승이발일도설)을 주장하여 理氣兩發說(이기양발설)을 주장한 退溪 李滉(1501∼1570)과는 理氣論에서부터 四端七情論(사단칠정론)에 이르기까지 그 견해를 달리 하였다.

李珥가 「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게 된 것은 朱熹가 理는 氣를 動靜하게 하는 所以 즉 까닭이라 한 것을 계승하여 理는 스스로 動靜할 수 없고 氣를 타야만 動靜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그의 모든 理論이 氣發理乘을 중심으로 論及되고 있기 때문에 氣發理乘一途說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理가 능히 動하고 능히 靜하면서 主宰性을 가졌다는 李滉과는 理가 언급되는 이론마다 견해를 달리 하였다. 그러나 唯氣論이라 하지 않고 一途說이란 어미를 덧붙인 것은 理氣의 관계를 둘이면서 하나이고(二而一) 하나이면서 둘(一而二)로 보면서도 氣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며 또 朱熹가 理氣의 先後관계를 本源을 논하면 理가 먼저이지만 稟賦 즉 現象에서 보면 氣가 먼저라고 본 것과는 달리 所以然으로서 理는 現象物도 所以然 즉 그 까닭이 되는 바는 역시 理이므로 理先氣後로 보아야 한다면서도 전체적인 이론은 주로 氣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1)

 

<천부경>이나 <삼일신기론>과 같은 사상이 고차원의 사상이기 때문에 어떤 종교나 무속으로 이용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깊고 奧妙한 사상일수록 합리적으로 이용하면 심오한 철학사상도 나올 수 있고 과학사상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고유의 「한」사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여 書論에 응용해 봄으로써 서예에 있어 새로운 창조의식을 개발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한」사상이 들어 있는 <천부경>은 본론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 數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뜻을 함유하고 있는 경전이다. 太始에 宇宙創造論에서부터 만물의 형성 원리는 물론 인간의 정신세계까지 다 含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한」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상인 동시에 인류 전체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老子의 '一生二 二生三 二生萬物'이라 한 사상도 여기서 나왔고 周濂溪의 太極思想도 여기에 內包되어 있다.10)

「三·一 사상」역시 천부경에서 나온 것으로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周易의 小成卦가 三爻로 되어 있는 것도 이 「三·一」의 원리이고 서예의 창작원리도 마찬가지이다. 무한한 정신의 세계를「一」이라 한다면 주관과 객관의 多樣을 종합하여 예술적 構想을 하는 것은 「二」와 같으며 이 구상을 形象化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三」으로 보는 것과 같다. 다시 이 「三」을 정신 「一」에 담으니 「三·一」원리 바로 그것이 된다. 意先筆後든 筆先意後든 이 원리를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李珥의 理氣論도 精神과 形象은 氣의 所産이므로 「氣」로 보고, 形象으로 나타나는 까닭(所以) 즉 예술적 표현으로는 構想的인 形式의 근원을 「理」로 인식한 것과 같은 이론이므로 「三·一」의 원리를 「二·一」 즉 理氣로 양분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理氣」 또한 하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 사상 「한·一」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企劃論壇
 

韓國的 書論 定立을 爲한 思想的 背景에 關한 考察 (2)

 

河 泓 鎭
書法探源誌 編輯委員


 

Ⅳ. 栗谷의 理氣論的 善惡觀과 美醜

조선 중기 유학자 栗谷 李珥(1536∼1584)는 氣發理乘一途說(기승이발일도설)을 주장하여 理氣兩發說(이기양발설)을 주장한 退溪 李滉(1501∼1570)과는 理氣論에서부터 四端七情論(사단칠정론)에 이르기까지 그 견해를 달리 하였다.

李珥가 「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게 된 것은 朱熹가 理는 氣를 動靜하게 하는 所以 즉 까닭이라 한 것을 계승하여 理는 스스로 動靜할 수 없고 氣를 타야만 動靜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그의 모든 理論이 氣發理乘을 중심으로 論及되고 있기 때문에 氣發理乘一途說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理가 능히 動하고 능히 靜하면서 主宰性을 가졌다는 李滉과는 理가 언급되는 이론마다 견해를 달리 하였다. 그러나 唯氣論이라 하지 않고 一途說이란 어미를 덧붙인 것은 理氣의 관계를 둘이면서 하나이고(二而一) 하나이면서 둘(一而二)로 보면서도 氣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며 또 朱熹가 理氣의 先後관계를 本源을 논하면 理가 먼저이지만 稟賦 즉 現象에서 보면 氣가 먼저라고 본 것과는 달리 所以然으로서 理는 現象物도 所以然 즉 그 까닭이 되는 바는 역시 理이므로 理先氣後로 보아야 한다면서도 전체적인 이론은 주로 氣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1)

이처럼 李珥는 氣를 위주로 理論을 전개하고 있으나 氣를 타고(乘) 있는 理도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藝術論的으로는 純善인 理와 감성적 現象인 美를 연관지어 보기에 쉬우며 또 동양의 예술론이 眞·善·美의 개념 속에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내용을 고찰하는 데도 善惡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氣質之性을 중요시한 李珥의 학설이 적합하며 또 서구의 感性的인 美學과 연관짓는 데도 氣論 중심의 善惡觀이 용이하므로 여기에서 다루어 보기로 하였다.

李珥는 「理有善惡說」에서 理는 원래 純善이나 氣를 타고 유행하면서 그 나누어짐이 萬殊로 되니 氣稟에 善惡이 있고 이 氣稟의 局限으로 인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理도 선악이 있게 된다 하였다.2)

<說文解字注>에 '美는 善과 더불어 같은 뜻(美與善同意)'이라 하였고 <爾雅義疏>에도 '美는 좋고(好也) 선한 것(善也)'이라 하였으니 古典的 의미로는 善은 즉 美와 직결되며 그의 對인 惡 또한 醜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現象界의 아름다운 形相은 理의 顯現인 동시에 氣稟의 淸濁 중 淸淨한 기운이 발로한 것이 되며 또 선악을 겸비한 氣質之性 중 善이 現象化한 것이 된다. 따라서 醜한 것은 惡氣와 濁氣가 나타난 것이 되는 것이다.

또 이이는 心性論에서 '性은 理요 心은 氣며 情은 心의 動이라.'하였고 또 '心의 未發은 性이 되고 이미 발한(已發) 것은 情이 되며 발한 뒤에 商量함은 意로 된다.'하였으며 또 四端七情論에서는 朱熹의 설을 따른 李滉이 '四端(惻隱·羞惡·辭讓·是非)은 理의 發이고, 七情(喜·怒·哀·懼·愛·惡·欲)은 氣의 발이다.'한 것과는 달리 四端은 純善이되 理는 발할 능력이 없으므로 七情 중에서 善一邊만 택한 것이라 하고 七情은 마음의 움직임(心之動)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다.3)

또 人心道心說에서는 '人心은 形氣의 사사로움에서 발생하고 道心은 性命의 바른 것(正)에 근원한다.'하였는가 하면 '道心은 純粹天理이므로 善은 있되 惡은 없으며 人心은 天理도 있고 人欲도 있으므로 惡도 있고 善도 있다.'하였다. 그리고 선악이 있는 인심을 선만 있는 도심으로 바꾸려하면 마음이 발할 때 形氣用事를 정밀히 살펴서 正理대로 하면 된다고 하였다.4) 여기서 이이가 性을 理라 한 것은 理가 形質의 氣 가운데 있어 人性 物性이 각기 特殊性으로 국한되면서 性으로 되기 때문이라 하겠는바 본래 性은 善한 것이나 형질의 기로 인해 개성으로 나타날 때는 선악을 아울러 가지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조작물이 美的이기 위해서는 性의 本然인 純善이 形質의 氣를 타고 現象界로 나타날 때 人欲이나 私心으로 타락하지 않게 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또 心의 動인 情도 理의 發이 아니라 氣의 發이므로 七情에서 보는 바와 같이 善惡이 섞여 있으므로 예술작품을 構想할 때 純善인 道心으로 이루어지게 私心을 버리고 正道로 나아가야만 아름다운 작품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醜한 작품이 되기 쉽다는 내용을 암시해주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순선인 道心으로 顯現한 작품은 純善한 四端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되어 倫理的으로나 道德的으로나 결함이 없는 작품이 된다는 사상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면은 현실이 지향하는 理想일 뿐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하겠는 바 서양의 美學이 美醜를 混有하고 있는 것처럼 선악이 섞인 七情을 純善인 理와 모순되지 않게 적절히 具現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李珥의 「心性論」과 「四端七情論」은 현대 미학적으로 보아도 善用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善과 美를 直結해 보는 견해에 대한 異說이 없는 바는 아니지마는 善 즉 美를 理想으로 삼아야만 感性的 美가 極에 달하여 타락할 때 새로운 방향을 摸索할 기준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孔子가 舜의 韶樂과 武王의 음악을 평하면서 舜의 음악은 善과 美가 다 極致에 달했지만 武王의 음악은 美는 극치에 달했으나 善의 극치에는 달하지 못했다5)하여 善과 美는 槪念上 다소의 차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으나 孔子 스스로도 善과 美가 일치하는 것을 理想으로 하여 여기에 미치지 못한 것을 善의 극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표명하였을 뿐 굳이 선과 미를 구분해보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본다. 孟子가 盡心章에서 '마음에 지닌 善을 充實케 하는 것을 美라 한다.'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서구에서도 「美」와 「善」은 동일하다고 보는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도 있는가 하면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 : 1225-1274)처럼 '「美」와 「善」은 동일하나 그 樣相에는 차이가 있다.'하는 견해도 있다.6) 칸트도 「善」은 도덕적 槪念의 규정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인데 비하여 「美感」은 主觀과 對象의 表象이 일치될 때 만족감을 주는 感性的인 것이라 하여 구분해보면서도 美感이 普遍性을 띠어야 한다는 대목에 가서는 「美」와 「善」은 공통성을 갖는다 하였고 또 應用美를 언급함에 있어서도 物의 형식이 도덕적 窮極目的에 일치한다면 그것은 최고의 응용미를 갖는 것이라 하며 이러한 物을 '美의 理想'이라고 한 것을 볼 때7) 칸트 자신도 「善」과 「美」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李珥가 純善인 理와 感性이 들어 있는 氣를 논할 때 理는 無形 無爲요 氣는 有形 有爲라 하여 구별해 보되 理氣가 形而上學的으로는 妙合하여 하나(一)라 하면서 「理」와 「氣」는 '하나이면서 둘이고(一而二) 둘이면서 하나다(二而一).'한 것은 「善」과 「美」를 상관관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개념의 것임을 알게 하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書論에 응용하려면 美論的인 면으로 접근함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칸트철학을 이이의 理氣論과 관련지어 논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李珥는 理가 스스로 움직일 능력이 없다고 보고 있는 데 비하여 칸트는 理性이 스스로 「善」을 규정할 능력이 있다고 봄으로써 「善」은 반드시 實踐理性의 개념적인 규정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였고 「美」는 直觀的인 취미판단에 의하여 판단되는 것으로 구분해보았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性善說的 입장에서 보는 이이의 說은 개념적인 규정 없이도 바로 本源的으로 「善」이 되어 氣와 더불어 現象界로 나타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관적으로 外界의 「美」를 느낄 수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善」은 「美」와 관계함이 간접적이며 混線的인 면이 없지 않은데 비하여 李珥의 「善」과 「美」는 본원적으로 상통할 수 있다는 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겠다.

Ⅴ. 結 語

이상 본 바와 같이 우리 만족은 고대로부터 문자창조의 사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鹿圖文(神誌篆이라고도 함)과 한글형체의 加臨多文(가림다문) 38자도 한웅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8) 또 三皇內文이라는 經文도 중국 역사상 최초의 帝王인 軒轅이 紫府仙人으로부터 얻어 갔으며 문자를 만들었다는 倉綖●9) 역시 符圖의 글을 우리 민족에서 얻어가 文字를 개량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었고 八卦를 만들었다는 伏犧도 우리 민족 계열이며 또 중국 고대 저명한 군주는 대부분 우리 민족 계통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를 남의 역사, 남의 문화라 인식하면서 半島史觀에 젖어 있는가 하면 天符經이나 三一思想과 같은 고귀한 사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巫俗이니 迷信이니 하면서 외면하고 외래사상 一邊途로 나아가 從屬文化로 轉落하여 뿌리없는 민족으로 誤認 받게 되었다. 서예 문화 역시 중국 書法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形相의 뿌리인 精神이 외래 사상에 젖어 한국적인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므로 남의 장점인 종합적인 작품은 나올 수 있어도 창작적인 작품은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천부경>이나 <삼일신기론>과 같은 사상이 고차원의 사상이기 때문에 어떤 종교나 무속으로 이용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깊고 奧妙한 사상일수록 합리적으로 이용하면 심오한 철학사상도 나올 수 있고 과학사상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고유의 「한」사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여 書論에 응용해 봄으로써 서예에 있어 새로운 창조의식을 개발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한」사상이 들어 있는 <천부경>은 본론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 數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뜻을 함유하고 있는 경전이다. 太始에 宇宙創造論에서부터 만물의 형성 원리는 물론 인간의 정신세계까지 다 含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한」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상인 동시에 인류 전체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老子의 '一生二 二生三 二生萬物'이라 한 사상도 여기서 나왔고 周濂溪의 太極思想도 여기에 內包되어 있다.10)

「三·一 사상」역시 천부경에서 나온 것으로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周易의 小成卦가 三爻로 되어 있는 것도 이 「三·一」의 원리이고 서예의 창작원리도 마찬가지이다. 무한한 정신의 세계를「一」이라 한다면 주관과 객관의 多樣을 종합하여 예술적 構想을 하는 것은 「二」와 같으며 이 구상을 形象化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三」으로 보는 것과 같다. 다시 이 「三」을 정신 「一」에 담으니 「三·一」원리 바로 그것이 된다. 意先筆後든 筆先意後든 이 원리를 떠날 수는 없는 것이다. 李珥의 理氣論도 精神과 形象은 氣의 所産이므로 「氣」로 보고, 形象으로 나타나는 까닭(所以) 즉 예술적 표현으로는 構想的인 形式의 근원을 「理」로 인식한 것과 같은 이론이므로 「三·一」의 원리를 「二·一」 즉 理氣로 양분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理氣」 또한 하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 사상 「한·一」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李珥의 理氣論은 朱熹나 李滉의 理氣論과 다를 뿐만 아니라 서구의 칸트철학과도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그의 善惡觀을 서구 美學의 美·醜觀과 바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으나 主氣論的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에서는 感性的인 서구 「미학」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이론인 것이다.

또 性善說的 입장을 취하면서도 觀念的인 「理」나 「理性」의 세계를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세계로 보지 않고 어디까지나 感性的인 「氣」의 所以(까닭)로 보고 있기 때문에 「善」을 悟性 개념의 規定的 판단으로 인식하거나 「美」를 趣味判斷으로 구분하여 인식하지 않더라도 性의 「善」은 氣와 더불어 바로 「美」와 直結되어 보편적인 「美」로 顯現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性善이 「美」로 發現할 때 濁氣가 강하여 醜로 전락하지 않게끔 평소에 心修하면 된다는 사상이다. 李珥는 어떤 先驗的인 것에 의지하여 「善」을 規定하거나 이와 구별되는 감성적 「美」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理」나 「理性」이 스스로 能力을 가진 것으로 잘못 인식함으로써 생긴 誤謬로 보는 主氣論的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理自能否認).

그러므로 修己治人도 氣로 된 몸을 닦는 것이 먼저이고 예술에 있어서도 人格陶冶를 먼저 하여야 無意識 중에 純然히 나타나는 形象이 「眞」·「善」·「美」를 갖추게 된다고 보는 사상과 같다. 만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떤 가식적인 욕심이 의식적으로 善의 탈을 쓰고 美인 양 나타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眞心은 孔子가 말한 '욕심 따라 쫓아도 法度에 넘지 않는다(從心所慾不踰矩).'는 聖의 경지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같이 李珥의 理氣論的 善惡觀은 氣論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書論의 美醜觀과 연관될 뿐만 아니라 天符經과 더불어 한국적 서론 정립에 그 思想的 背景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두 思想뿐만 아니라 元曉의 和諍論, 惠崗 崔漢綺의 氣測體義論(기측체의론) 등 書論에 응용할 수 있는 사상이 많은데도 우리 문화 獨自的인 書論이 아직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 볼 일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것을 우리 스스로가 천시함으로 인하여 우리 獨自文化를 死藏시키는 일이 없어야만 새로운 서예문화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철학회 편 <韓國哲學史 中卷>, 1987. 6. 30, 동명사 발행, 246-247p 참조

2) 앞 인용 <한국철학사 중권>, 252-253p 참조

3) 앞 인용 <한국철학사 중권>, 257p 참조

4) 앞 인용 <한국철학사 중권>, 259-263p 참조

5) <論語> 八佾 25

6) 河在昌 저 <美學의 諸問題>, 1994. 8. 30, 원광대학교 출판국 발행, 33p 참조

7) 김용정 저 <칸트 哲學硏究>, 1978. 3. 25, 유림사 발행, 334-342p 참조

8) 임승국 번역·주해 <桓檀古記>, 1986. 6. 16, 정신세계사, 232p 참조

9) <寧邊誌> 71년판 126-127p에 의하면 東國(우리나라를 지칭) 사람이라 함, 앞 인용 사단법인 한배달 저 [천부경 연구], 33p 참조

10) 全秉薰 著 <精神哲學通編>, 1983. 1. 5, 明文堂 발행, 32-33p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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