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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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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주의의 신학적 매력은 세 가지 원천에서 온다.
첫 번째 원천 : 현실의 불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
조지가 살았던 19세기 후반 미국의 현실은 실제로 극심한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철도 회사들은 막대한 토지를 독점했고, 도시의 토지 투기는 노동자들의 주거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 현실에 대한 조지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아모스와 이사야의 예언자적 고발과 공명하는 것처럼 들렸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가격의 폭등, 토지 불로소득의 집중, 청년 세대의 주거 빈곤은 실제로 존재하는 불의다. 이 불의에 분노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동기는 기독교적으로 정당하다. 조지주의는 이 정당한 분노에 편승하여 자신의 이론을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한다. 정당한 분노가 반드시 정당한 해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조지주의의 매력에 저항하기 어렵다.
두 번째 원천 : 성경 언어의 전략적 활용
조지주의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 "희년", "가난한 자를 위한 정의"와 같은 성경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언어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즉각적으로 공명한다.
그 공명이 비판적 검토를 약화시킨다.
성경의 언어로 표현된 주장은 성경적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을 경고할 때 강조한 위험이다.
다른 복음은 완전히 낯선 언어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기독교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기독교의 내용을 바꾼다.
언어의 친숙함이
내용의 변질을 가린다.
조지주의의 언어는 충분히 성경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그 내용이 성경적인지를 따로 검토하려는 동기가 줄어든다.
세 번째 원천 : 단순한 해법의 심리적 매력
조지주의는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단순하고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토지가치세 하나로 빈곤, 불평등, 투기, 환경 파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심리적으로 강력한 매력을 발산한다.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고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은, 그것이 종교적이든 경제적이든, 항상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다.
하이에크는 이 단순한 해법에 대한 유혹을 이렇게 경고했다.
"The curious task of economics is to demonstrate to men how little they really know about what they imagine they can design. To the naive mind that can conceive of order only as the product of deliberate arrangement, it may seem absurd that in complex conditions order, and adaptation to the unknown, can be achieved more effectively by decentralizing decisions." — Friedrich Hayek, The Fatal Conceit(1988), Chapter 1
"경제학의 기이한 과제는 인간들에게 그들이 설계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적게 알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질서를 오직 의도적 배열의 산물로만 생각할 수 있는 순진한 마음에게는, 복잡한 조건에서 질서와 미지에 대한 적응이 의사결정의 분산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치명적 자만》(1988), 제1장
하이에크의 이 통찰은 조지주의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사회 공학(social engineering)에 적용된다.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하이에크가 말하는 "치명적 자만"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 전체를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며, 이 오만은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